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몰락 작전 (문단 편집) === 핵폭격 === 상륙전에 앞서 미군은 '''핵폭격으로 일본군의 방어선을 증발시켜버릴 계획을 짜고 있었다.''' 나가사키 핵폭격 직후 육군참모총장 [[조지 C. 마셜]]의 지시로 공병대의 존 헐(John E. Hull) 중장은 핵무기 책임자이던 라일 시먼(Lyle. E. Seeman) 대령에게 핵폭격 준비 상황을 묻는 전화를 걸었다. 이 통화를 기록한 녹취록에 따르면 라일 시먼 대령은 몰락작전 직전까지 최대 7개의 핵폭탄[* 이 일곱 발의 핵 중 가장 먼저 준비되는 것은 8월 18일 이후 맑은 날을 잡아 지난번에 폭격하려 했다가 포기한 고쿠라에 투하될 예정이었다.]을 준비할 수 있고, 투하 계획과 그 적당한 날짜에 대한 견해 그리고 핵무기 투하 후에는 될 수 있으면 6일 이상 아무리 빨라도 3일은 지나서 상륙 작전을 시작하고, 핵폭격 48시간 전까지는 어떤 병력도 핵폭격 지점에 들어가지 말 것을 권고한 상세한 매뉴얼도 준비된 상태였다. ([[https://s3.amazonaws.com/files.digication.com/Ma7364d2ccee664c811d671f06e4c4f45?AWSAccessKeyId=AKIAJBQAXZEE3MAI6INA&Expires=1446449734&Signature=zBYuYQaDY54KD%2BTR4dvWwjzLvtk%3D&response-content-disposition=inline%3B%20filename%3D%221945-Hull-and-Seaman-Third-Shot.pdf%22|출처]]) 거기에 비축된 핵무기를 전부 쓰는 것을 생각해보면 상륙 뒤에도 핵무기가 만들어질 때마다 필요한 곳에 하나씩 폭격할 가능성이 높았다. 다만 문제는 당시까지는 [[방사선]]이 뭔지 알고는 있었으나 위험성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라, [[피폭]]의 위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작전이 계획되었다는 점이다. 원자폭탄 자체도 그냥 '''좀 많이 센 폭탄''' 정도로만 알려졌을 정도로. 게다가 폭심지에 미군을 상륙시켰다간 전후 피폭 후유증으로 미국 전역이 고생했을 가능성이 높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